'평보체'로 한글서예 새로운 경지를 연 명필가

서규환_평보 서희환 선생 사촌동생

조영인 기자 | 입력 : 2024/06/22 [15:19]

▲ 서규환_엄다면 와촌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평보 서희환 선생 사촌동생    

평보 서희환 선생은 함평 출신의 한국 서예 대가로서 자랑스러운 족적을 가진 인물이다. 여전히 함평 엄다 와촌마을에는 서희환 선생의 사촌 동생 서규환 씨를 비롯해 친인척이 거주하고 있다. 서규환 씨는 사촌 형인 평보 서희환 선생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크다.

 

▲ 평보 서희환 선생 생전모습    

평보 선생은 저물어가기엔 조금은 이른 나이에 병환으로 작고했다. 선생의 직계 가족은 서울에서 살고 있다고 전했다. 평보 선생 집안은 대대로 명필로 이름을 날리는 재능을 겸비했다. 인터뷰에 응해준 서규환 씨의 큰 아버지가 평보 선생의 아버지이다. 그 피는 어디 가지 않지 않겠는가. 서규환 씨도 늦은 나이지만 향교 출석은 놓치지 않고 참석하는 편인데 향교는 물론 마을에서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거론할 때 빠지는 법이 없다. 또한 중부(仲父) 둘째 아들 역시 부산에 사는데 의당 서정환으로 명필가로 명성이 자자하다고 전언한다.

 

대대적으로 명필과 인연이 깊은 집안에서 평보 선생이 제일 혁혁한 공적을 남긴 것은 명실상부한 일이다. 함평 와촌에는 선생이 사시던 생가가 현존하며 지금 그 터에는 이천 서씨 집안 종손 며느리가 거주한다. 평보 선생은 해방 이후 애국시, 화엄경, 용비어천가등의 작품을 내며 업적을 남기셨는데 함평 지역에서는 모르는 지역민이 많다. 서규환 씨를 비롯하여 집안 문중에서도 이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힘을 모으자고 의견을 피력하는 상태다. 더구나 서희환 선생은 공연한 함평 엄다출신으로, 학다리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선생의 일부 온라인상 자료에는 목포 출생으로 기재되면서 정보에 허와 실을 발견한다. 함평에서 태어났지만 이른 나이에 출타하여 광주 사범학교를 입학, 선생님이 되어 목포로 발령 난 후 일찍이 근대의 명서가 손재형(孫在馨)에게 사사 받은 걸로 알려진다.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에서 교편을 잡고 대학미전 운영위원을 지냈으며,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및 동아미술제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서울 세종대학교로 간 후부터 탄탄대로 길을 걸은 것이 명명하기에 함평이 고향이라는 사실을 목포로 잘못 표기되는 것은 이래저래 함평 입장에서 손해이다. 함평이 발 벗고 나서서 서희환 선생의 작품이 많은 서예 연구자와 예술 애호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그의 탁월한 예술성과 업적이 대한민국 서예 문화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부각해야 한다.

 

▲ 오른쪽 작품_높이 올라 멀리 보라, 84×64㎝ 종이에 먹, 1978<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평보는 예스러우면서도 현대감 넘치는 한글서예를 구축하였다. 평보가 스승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이후의 글씨는 평보체로 불리며, 그동안 서예사에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한글서예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평보의 마치 표어와도 같은 경구는 실용을 바탕으로 한 예술적 표현이 가미된 것으로, 좋은 글귀를 써서 아름다움을 감상했던 문화가 이 시대의 서예가들에게 요구되었다는 점에서도 우리 서예 문화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배원정 학예연구사>

 

평보 선생은 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 매우 많다. 국전에 출품하여 4차례 계속 특선을 수상하며, 그중 1968년 제17회 국전 이은상의 시를 쓴 한글작품 애국시(愛國詩)를 출품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한 영광을 얻었다. 이는 국전사상 서예 부문에서 최초 대상을 수상한 가치가 있다.

  수많은 업적을 자랑하는 함평 출신 서예계 거장, 평보 선생의 함평 묘지는 가까이 사는 사촌들이 벌초를 하며 돌보고 있다. 가족들도 멀리 살아 자주 오지 못할뿐더러 지금까지 추모사업 같은 일 또한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다. 한번은 서규환 씨는 사촌 형님이라는 관계성을 놓고도 자신이 존경하는 명필가이기에 당신이 거주하는 현재 마을 회관 2층에 평보 선생의 전시관을 작게나마 만들려고 한 적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보충할 예산이 부족하여 추진이 무산된 전적이 있어서 마음 한켠에 죄송함이 내재되어 있다. 아마도 평보 선생의 작품들은 대개 큰아들이 소장하고 있거나 특정 장소에 전시되도록 이관된 상태일 것이다.

 

"한 번은 다른 서울 형님의 집을 갔는데 보여 주더만. 외국에서 작품 세계를 펼치는 명필가들과 평판을 교환을 해왔다는 거여. 근데 외국 명필이라고 하는디 내가 볼 때는 초등학교 4학년 글씨체면 모를까명필에 대한 의문감이 들어버려. 그런 작품을 비교해 보니께 형님의 작품 가치가 함평에서 더 저평가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이 들더만. 분명 예술 애호가들이 보면 차이를 실감할 거야."

 

평보 서희환 선생의 예술적 업적 그리고 함평과 고향으로 얽힌 인연은 쉬이 숨길 수 없는 지점이다. 지역 예술의 발전과 보존에 큰 기여를 한 명인으로 함평 지역에서 자랑스러운 예술가로 남아있게끔, 평보 서희환 선생의 작품과 가치를 영원히 전향할 수 있도록 지역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려야 한다. 또한 별 관심 없이 쓰러져 가는 생가터와 평보 선생의 묘지를 간단히 정돈하고 표지판이라도 설치하여 업적을 설명하면 좋겠다.

 

▲ 엄마 와촌마을 평보 서희환 선생의 생가를 둘러보 있는 최창호 대표와 평보 서희환 선생의 사촌동생 서규환님    

 

평보 선생을 기리는 뜻이 있는 분들은 편히 방문하여 참배라도 할 수 있도록. 물론 이는 가족들의 합의를 거쳐 행정과 상의 후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츰 진행되었으면 좋겠어. 평보선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돌아가시기 전에..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 지난 5월 3일 함평천지전통시장에서 평보 서희환 선생 탄생 90주년 기념 ‘제1회 함평군민 평보 서희환 한글글씨쓰기대회’가 열렸다.   

함평 엄다 출신 서예가, 평보 서희환 선생의 생가와 묘지를 정비한 후 별개로 배움의 장을 마련하는 구체적인 행사들을 펼치게 되면 그의 예술적 업적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고 예술적 가치 계승을 유의미한 것으로 감응할 만하다. 지역이 예술과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조력하고 평보 서희환 선생이라는 인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예술·문화를 넘어 예술적 유산을 지키고 발전하는 데 높은 기여도를 보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고졸古拙한 획이 서예의 격을 높이는 첩경이다. 그런 획이 나오려면 역대 명인들의 것을 두루 받아들여 익힌 뒤 그것을 부수는 과정이 필요하다. <평보 서희환의 생전 말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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