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낡은 것들과 함께 나도 나이들었네

김연식·이오례 중앙세탁소

조영인 기자 | 입력 : 2022/03/14 [09:26]

 

함평군은 국토교통부에서 추진하는 2019년 하반기 도시재생 뉴딜사업 일반근린형 공모에 최종 선정되어 국비 포함 총사업비 145억 원을 확보 한 상태이다. 함평읍 중앙길 일대 도심주거 기능회복을 위한 주택정비사 업, 한우테마거리 및 복합플랫폼을 조성하는 등 지역 내 부족한 공동체 공 간을 공급 운영할 계획에 있다. 

80년대 함평 대표상권이었던 함평읍 군농협사거 리부터 구한전 구간인 함평읍 중앙길을 다시 활성 화하려고 함평군이 함평읍 중앙길을 비롯한 기각리 일대에 예산을 투자하여 도시재생을 이룰 것이다. 옛 명성의 부활은 기쁜 일이지만 오랫동안 중앙길 을 지키며 자신의 공간을 운영한 사람들에게는 아 쉬움이 동반된다. 중앙길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겪은 희로애락이 담긴 추억의 동영상은 가슴속에서 멈추지 않고 재생될 것이다.

 

 중앙길의 터를 지킨 분들 중 50년이 다 된 중앙 세탁소를 아내분과 함께 운영해 온 김연식(49년생) 씨를 만나봤다. 그는 세탁과 드라이를 담당하고 주 로 아내분은 수선을 도맡아 한다. 고향은 함평 대동 면 향교리지만 45년 전 함평읍으로 이사를 와 세탁 소를 운영했는데 전세 90만 원에 세탁소 자리를 인 수했었다. 세탁소에서 일하던 동네 형님이 “세탁 기 술을 배워서 향교에서 세탁소를 차려보는 것이 어 떠냐” 제안을 준 기회로 기술을 배우게 됐다.

향교에서 먼저 ‘여정사’라는 세탁소를 하다가 지금의 중앙세탁소로 옮겼다. 본래 알던 동생이 운영한 중앙세탁소를 김 연식씨가 인수하면서 삶의 전부가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일터 에서 쌓은 그의 인생은 함평의 중앙길 역사와 닿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45년 전을 떠올려보길, 상가들이 줄지어 있 고 돈을 많이 벌어 좋게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 통닭집, 시대 마 크사, 대부분 구멍가게인데도 장사가 다들 잘 됐다.

 

“이 중앙길이 정말 좋은 길이었어요. 서울로 따지면 명동 길처럼 사람이 엄청났어요. 조그마한 구멍가게들을 찾는 이들이 많아 장 사가 잘됐습니다. 길도 지금이랑 다르게 양방향이어서 북적북적 했습니다. 중앙길에도 세탁소가 두 군데 정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 는 데 벌이가 좋았어요. 그래서 지금 사는 위치에 터를 마련하여 세탁소도 이사를 했어요.”

그는 세탁과 수선으로 50년이 가까운 시간을 밥벌이하며 기술 을 연마했다. 시행착오도 있고 손님들의 오해를 사는 일도 있었 지만 재밌는 추억거리가 더 많다. 함평읍 중앙길의 도시재생이 결정되고 이 길을 떠나야 한다고 들었을 때는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울적했는데 좋은 이웃들,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세탁소를 운영하던 수많은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시골, 농촌에 있는 세탁소 특 성상 세탁으로 만나는 옷감도 한정된 편이라 새로운 옷감에 대한 지식, 세 탁 방법을 본의 아니게 늦게 인지했다. 거기서 비롯된 실수는 지금도 웃음 이 난다. 어떤 손님이 ‘벨벳’ 소재의 옷 세탁을 맡겼는데 당시만 해도 그 옷 감을 본 적이 없던 그는 반대로 뒤집어서 스팀을 하는 작업이 필요한 옷감 을 일반 바지를 다리듯 해서 옷을 망가트렸다는 것이다. 또한, 세탁소가 일 손이 부족할 정도로 바쁠 때는 주의 깊게 살피지 못하면 곧바로 실수로 이 어진다. 옷을 잘못 줄인 적도 있고 세탁을 맡긴 고객들이 물건을 잃어버렸 다고 세탁소를 의심한 헤프닝도 있었다. 

 

 

본인의 물건을 세탁소에서 훔쳐 갔다는 식으로 오해를 했는데 손님들은 일의 인과관계가 밝혀지면 해당 일에 대한 실수를 인정하고 매너있게 사과 를 건냈다. 반대의 경우, 손님이 어디서 잃어버린 지도 모르고 있던 현금이 나 반지 같은 금속품을 찾아주기도 했다. 중앙세탁소에서 만난 이웃들에 얽 힌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이 길이 헐린다고 하니까 함평 발전을 위해서는 참 좋은 일인데 제 마음은 그렇드만요. 내 평생을 바친 결과가 이 집 하나 남는 거였는데 고것이 헐린다 는 소리를 들은 날은 솔직히 잠을 못 잤어요. 제가 집을 샀을 때 친구, 지인들 모두 부럽다 했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 다리가 다쳐서 장애인이 되었는데 그 럼에도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혼자 스스로 일어나서 기언치 성공하겠다 는 일념으로 우리 애기엄마도 저 때문에 고생을 어마어마하게 했고요. 피땀으 로 이 집, 중앙세탁소를 일군 건데 마음이 무겁고 안 좋았죠.”

초등학교 1학년, 돌아보면 참으로 어린 나이에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장애 등급을 받게 되었으니 그만큼 더 체력을 쓰고 노력하여 스스로 기술 을 배워 본인의 길을 개척했다. 그렇기에 이 중앙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부 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판이 자자하다. 그는 종교인으로서, 세탁소 운영자 로서 양심을 지키고 선의를 베푸는 일에 인색하지 않기로 했다. 함평나비 축제가 첫 신호탄을 울린 시절, 그때부터 부인에게 강조했다. “우리가 하는 행동은 자고로 함평의 평판과 연결되기에 작은 수선만큼은 무료로 하자”했다. 부인이 수선을 담당하기에 늘 아 내에게 “누구든 와서 옷이 터져서 꼬메 달라”하면 그냥 무료로 해주라 당부했 던 그 철칙은 점점 손님이 끊겨가는 현 재도 변하지 않는 룰이다. 돈을 일절 받 지 않고 봉사의 마음으로 해주는 것. 그 가 듣고 싶은 말은 그저 ‘그 양반이 세탁 소 할 때 참 좋았노라…’일 뿐, 그저 담담한 선의이다.

 

 

“중앙세탁소 옆을 지 킨 지인들, 선후배들과 떨어지는 슬픔이 크지 만 좋은 일이 확정된 만 큼 현존하는 사업체들 은 더 잘되길 바라요. 덧 붙여 제 바람은 함평은 첫째, 교통수단이 안 좋 아요. 원래 양방형이었 던 길이 일방통행이 되면서 내려가지 못하고 올라만 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죠. 앞으로 도 로도 넓어지고 군에서 계획한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중앙길 이 옛 명성을 찾길 바랍니다. 그 변화에 일조하며 돕겠습니다.”

도시고 농촌이고 대형 기업에 눌려 개인 세탁소가 쇠퇴해가는 시점과 맞물려 어려운 시기에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중앙세탁 소가 끝을 앞두고 있다. 역사와 인정(人情)을 간직한 중앙세탁소 의 운영자, 김연식-이오례 부부는 이제 황혼의 도전을 앞둔다. 도 시재생으로 바뀔 함평읍의 새로운 미래를 응원하면서 중앙세탁 소를 지키고 이끌어온 그간의 경험과 노련미로 고향 향교 마을로 들어가서 소일거리삼아 양봉이라는 제2의 여정을 준비한다. 수많 은 사람들의 옷을 책임졌던 부부의 손이 닿는 곳마다 꿀처럼 달콤 한 세상이 펼쳐질 테니, 그들의 인생 번외편은 다시 쓰이고 읽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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