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전문안경사 넘어 무화과로 선진농업인의 길 활짝 열어간다.

조성지_학교면 귀농인

조영인 기자 | 입력 : 2024/08/28 [17:10]

▲ 농촌진흥청 주관 '2024 농업인 스마트경영 혁신대회' 농식품 라이브커머스 최우수상을 수상한 조성지씨    

 

높은 빌딩, 화려한 불빛, 자정이 넘어도 꺼지지 않는 네온 간판, 24시간 달콤한 배송 서비스. 도시 생활이란 늘 안테나를 펴고 살아야 하는 데서 오는 피로감을 잠재울 만한 짜릿한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그 이면에 도사리는 불편함을 받아들이면서도 서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속세의 맛을 보면, 블랙홀 같은 매혹에 빠져나오기 싫어진다. 또한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 정착에 성공하고 경력을 견고히 쌓은 사람일수록 귀촌·귀농은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정년퇴직 후 제2막의 인생 도약을 앞둔 중년의 연령대가 아니라면, 젊은 사람에겐 그 배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고심이 깊어도 효심은 이를 무력화한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위해 본인의 안정된 생활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앞뒤 가리지 않고 고민을 단축한다. 설령 희생이라고 불려도, 언제나 먼저 양보라는 총알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관계다. 조성지 씨는 이 앞선 수식어구 뒤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이다.

 

조성지 씨는 함평이 고향이지만 일찍이 부모님께서는 초등학교 3학년일 때 오빠와 함께 인천으로 이사시켰다. 부모님은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게 하며 큰물에 내던져졌다. 함평에서 짧은 유년기를 보내고 도시에서 제법 유학이라 불릴 만하게 생활하면서 약사를 꿈꾼 적도 있다. 이상과 현실은 괴리가 있기 마련이다. 약사 공부는 어렵다는 판단이 서자, 전문성이 깃든 일이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2차 진로 고민이 이어졌다.

 

안경사는 전문성을 익히면 나이에 상관없이 준 전문성을 가지고 오래 일할 수 있을 직업이라고 판단했다. 곧장 안경광학과를 진학하여 졸업하자마자 서울에서 안경사로 취업하여 일했다. 서울에서는 오로지 돈을 좇았다. 직원 복지라는 개념이 안경사에게는 흔하지 않은 혜택으로 느껴지는 때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근무하는 것이 몸에 무리가 가는 스케줄이라는 인지가 덜 되었다. 조성지 씨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더 월급이 많은 곳으로 이직하는 게 뿌듯했고 삶의 동력이 되었다. 15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일에 몰두한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함평에 계신 친정어머니의 병환이 깊어졌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함평에 내려오겠다는 선택을 했다. 당시는 미혼인 터라 혼자만 결정하면 되었고 미룰 만한 장애물이 없었다. 그때 어머니의 담당 의료진이 설명하기를, 엄마께서 앓는 병은 시기에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오늘 밤이라도 돌아가실 수 있는 위급성을 강조했다.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사가 마치 행운을 빈다의 또 다른 어감처럼 걱정이 깃든 안부 인사가 줄곧 계속되었다.

 

딸이 함평으로 오면서 어머니는 알게 모르게 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셨는지, 서울에 있을 때 듣던 엄마의 절망적인 소식을 전복시키는 차도를 보여줬다. 젊은 딸이 본인의 병시중을 위해 경력이 단절되는 사실이 내심 걱정된 어머니는 일을 다시 시작하라는 권유를 하셨고 광주에서 마침 복지가 매력적인 일자리를 찾게 되었다. 서울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풀 스케줄로 근무하는 조건이라면, 광주에서 얻은 일은 안과 내에 있는 안경원이었다. 근무 중간에 점심시간이 보장되고, 9 to 6 근무 조건이 이 업계에서는 나름 파격적이었다. 그렇게 재취업에 이르고 안경사 일을 지속하면서도 간호와 농사를 도왔다. 좋은 인연이 이어져 이전한 안과와 같이 안경원을 다시 개원하면서도 그녀를 불러줬다. 짧게나마 일터에 나가는 식으로 파트 직처럼 일주일에 한두 번 일하고, 농업인에 초점을 맞춘 생활을 존속한다.

 

▲ 2024 농업인 스마트경영 혁신대회 라이브커머스 경진대회    

 

요즘 주업으로 무화과 재배에 힘쓰면서 성과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귀촌한 전후, 이미 부모님은 무화과 농사를 짓고 계신 상태였다. 물론 규모는 지금과 달라서 부모님의 수고를 덜어준다는 개념에서 일손을 돕는 식이었다. 조성지 씨는 딸의 역할에 충실했다. 서울에서 안경사를 할 때부터 바쁜 농사철에 맞춰서 휴가를 냈으니 말이다. 10시에 근무 끝나고 곧장 내려오면 새벽 3~4시 쯤이다. 도착해서 잠시 눈을 감고 기상하는 순간부터 고추, 양파 농사 등 시골 일을 도왔다. 그 누구보다 농사는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를 잘 알고 있었다. 함평에 정착 후 결혼하고 육아를 병행하면서 본격적으로 무화과 재배를 해 보기로 결심했다.

 

원체 부모님이 농사짓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세월이 길고 오라버니도 먼저 농사를 시작했기에 보고 배운 게 많다. 조성지 씨와 반대로 남편은 도시에서만 자랐던 터라 시골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시골일수록 근면하고 끊임없이 할 일이 생성됨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시골은 할 일도 없으니 저녁 8시면 잠들겠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을 호기롭게 뱉는 남편의 초창기 모습을 떠올리면 코웃음이 나온다. 언제나 진심으로 농사짓는 부모님을 보고 자라며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을 펼친 조성지 씨 입장에서는 절대 공감할 수 없는 대목이다.

  

아버지는 누구와 견줘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농사꾼의 FM 면모를 가진 분이다. 농사 선배로서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뚜렷한 특징을 가진 자랑스러운 어른이다. 개인 SNS 채널에 농부의 유형이라고 만들어서 아버지를 설명하는 영상을 올린 적도 있다. 그만큼 철두철미형으로 농사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모든 과정을 머리로 그려보고 실현해 내고 정리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분이다. 반대로 그녀는 성격만 급한 농부형이라고 칭한다. 나아가 딱 중간에 있는 오빠와도 사뭇 다르다. 오빠는 겉으로는 유유자적하게 농사를 짓는 것처럼 보이지만 머리로는 아버지와 판박이다. 이미 할 일에 대해서는 시뮬레이션을 미리 돌려보고 행동으로 구현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설렁설렁하는 것 같아도 정확도가 높다.

 

피는 거스를 수 없는 것 같아요. 오빠도 저도 확실히 부모님을 보고 자란 영향이 짙어요. 엄마, 아빠를 떠올리면 부지런히 농사지은 모습이 첫 번째로 떠오르거든요. 저는 부모님의 발끝이라도 도달하려면 더 많이 노력해야 했어요.”

 

 

막 시작했을 때 무화과 농사는 소규모였다. 육아가 우선이어서 농사에 전념할 에너지가 부족했다. 노지 재배로 키운 무화과가 맛이 더 뛰어난 걸 잘 알지만, 기후 위기는 점차 심해지고 자연재해는 예상할 수 없거니와 개인 노력으로 예방한다고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다. 위험성을 몸소 느끼자, ‘농사는 규모가 작을수록 들인 노력과 수익은 절대 비례하지 않으며 자급자족 수준에 머물겠구나판단이 섰다. 무리하더라도 할 수 있는 한 최대치로 규모를 늘려보았다. 지금은 약 1,300평 규모로 노지 재배는 800, 나머지는 하우스 재배로 청 무화과라는 종목에 집중한다.

 

사실 농산물 재배만으로 높은 수익을 이끌 수 없다. 대안을 생각하면서 얻게 된 소식은 함평은 귀농·귀촌인을 위한 양질의 커리큘럼이 많단 것이다. 그렇게 함평농업기술센터에서 농업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 참여한다. ‘스마트 강소농업인 마케팅 역량 강화 교육’, ‘온라인 마케팅 활성화 교육등 스마트한 온라인 생활을 위한 마케팅 교육을 포함하여 스마트스토어’, ‘스마트팜’ ‘라이브커머스 운영관리등 다양한 분야에 발 담글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 과정이 많다. 이를 수료하면서 농산물 재배는 온라인 유통 판로 확대까지 염두해 둬야만 농사로 생계를 지속할, 높은 수익의 발판이 마련되는 깨달음을 얻었다. 조성지 씨는 아빠랑 오빠의 사업체가 따로 있지만 편승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서 자긍심을 느끼는 것이 본인 사업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만드는 투자인 셈이다.

 

제 고객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스마트스토어 함평 무화과 푸르미를 열었어요. 저희 대표 상품인 청 무화과의 의 푸름을 빗댄 작명이었죠. 그러는 과정에서 라이브 커머스를 인지하게 됐어요. 쉽게 말하면 1인 홈쇼핑으로써 판매자가 쇼호스트 역할까지 수행하며 판매를 유도하는 거죠. 주변 멘토님이 소질 있는 것 같다. 한 번 도전 해봐라.’ 전폭적으로 밀어주셔서 용기를 갖고 도전하고 공부했어요. 아직은 시작 단계라 더 성장해야 하지만 꼭 안정화하고 싶은 부분이네요.”

 

교육이 최대 20회 차까지 진행된다고 했을 때, 현실적으로 육아를 하는 엄마 입장에서 꾸준히 참여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럼에도 교육 과정에 매료되었고 포기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컴퓨터를 전혀 다루지 못한 대상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고 배우도록 점진적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게 감사한 부분이다. 초빙된 강사 경력도 믿음직하고 단기에 그치지 않고 심화 과정을 계속 이어가는 농업기술센터의 프로그램은 소문낼 만하다. 진정한 농업인으로 자리 잡기 위한 교본서를 받는 심정이다. ‘농업인의 길이 교육만으로 뚝딱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므로, 교육과 개인의 노력이 합쳐지면 고도의 만족도를 끌어낸다.” 그러기에 적극 추천한다.

 

최근 자긍심에 날개를 달아 준 소소한 성과가 있었다. 농촌진흥청 주관으로 ‘2024 농업인 스마트경영 혁신대회농식품 라이브커머스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상금 백만 원을 받았다. 함평에서 남, 여 각 1명씩 최우수상을 받는 영광의 순간을 맛봤다. “멘토가 되어주고, 친한 선배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은 손수마켓 운영자 박명진 씨를 뒤따라 다음 기회에는 대상에 견줄 만한 성과를 위해 정진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귀촌·반 귀농 생활을 펼쳐가는 조성지 씨. 서울과 비교했을 때 함평 같은 농촌 지역에서는 문화, 교육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실제로 살아 보고 얻은 교훈은 이런 현실적인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이 먼저 움직이면 절대 아쉬움만 존재하는 지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도시든 촌이든 거주하는 곳이 어느 지역이든, 내가 이 고장에서 교육하겠다는 열정을 뒷받침하는 정보력만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작고하신 어머니는 마지막에 이런 조언을 해주셨어요. ‘이왕 함평에서 정착하기를 결심했으면, 함평이 제공하는 교육 인프라는 자녀를 위해 최대한 활용해 봐라.’ 그 후, 함평에 대해 검색하니까 얻을 수 있는 자원이 무궁무진한 거예요. 교육 관련 센터들도 많고요. 영재교육원, 창의 융합, 도서관 프로그램들을 비롯해서 잘 활용하면 저를 비롯한 아이들의 자기 계발에 상당한 도움이 되겠다는 걸 단박에 알았죠. 제도적으로 인근 지역만 봐도 교육을 따내려고 하면 경쟁률이 치열해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함평은 부모가 조금만 빨리 노력만 하면 선착순으로 순위에 드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님을 경험했어요. 저는 대부분 1~2등 안으로 커트라인에 들어가요. 드리고 싶은 말은 함평에서도 충분히 아이들에게 인근 광주까지 보내지 않아도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많다는 것. 아 다만, 타지역과 달리 축구 교실이 없다는 것은 매우 아쉽습니다. 아무쪼록 자연을 벗으로 삼고 자아효능감이 큰 아이로 키우도록 긍정적인 경험을 같이 누리길 바라요.”

 

 

엄마이자 동시에 농업인, 스마트스토어를 이끄는 사업가, 1인 쇼호스트, 원래 본업인 안경사까지 조성지 씨를 규정할 만한 수식어는 많다. 자기 PR이 중요한 N잡러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청 무화과라는 작물의 푸름을 통해 영감을 받고 자연의 주도에 몸을 맡긴다. 농사에 쏟는 물리적인 노동이 힘들어도 언제나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감사함을 갖는다. 주변인들과 상생하며 삶의 많은 도전과 희열을 주지하며 아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엄마이다. 아이들이 엄마를 닮아, 시골에서 살면서 항상 도시로 떠나고 싶다는 열망을 품는 게 아니라, 시골이 선사하는 자연 속에서 영감과 휴식을 내적 동기로 삼고 미래를 이끌어가는 강인성을 지니며 자립심을 구축하길 바란다. 요즘 화제가 되는 사이트를 방문한다는 인터넷 용어인 성지순례의미처럼 조성지 씨가 발판을 삼고 진행하는 일들이 시골과 도시의 구분 짓지 않고 통하는 길목이 되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지역민이 용기를 얻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기 위해 그녀가 구상한 콘텐츠로 이름대로 성지순례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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